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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의 정신가운데 가장 핵심정신은 역시 제 힘으로 사는 정신이다. 충무공은 32세에 늦게 과거에 급제를 하고도 찾아가는 사람이 없어 미관말직인 종9품의 권관(權管:하사관)으로 그것도 제1급 귀양지인 함경도 삼수고을에 있는 동구비보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충무공을 딱하게 여긴 유성룡이 율곡과의 만남을 주선했지만 충무공은 이를 한사코 외면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힘으로 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 힘은 어쩔 수 없는 오기(傲氣)의 길이 아니라 자주하고 자립하는 충무공의 기본정신이었고 그 힘은 부단한 자기연마에 따른 실력과 자신감에서 나온 결과였다.

충무공이 발포(전남 고흥)의 만호(萬戶:수비대장)로 있었을 때이다. 하루는 충무공의 상관인 성박이 사람을 보내어 객사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찍어다가 거문고를 만들려고 하자 "이것은 나라의 물건이요"라고 하면서 거절했던 공이다. 공의 목표는 오직 정의였다.

충무공의 나라사랑 정신은 단순히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愛國)이 아니라 애국의 단계를 넘어서 우국(憂國)하고 구국(救國)하는 정신이었다.

충무공에게서 본받아야 할 또다른 정신은 국민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정신이다. 장군은 기동중에 피난민을 만나면 전쟁을 하는 군인이라고 해서 위세를 부린 것이 아니라 말에서 내려 노약자들과 어른들을 찾아 손을 잡고 개유(開諭:타이르는 말인데 추측컨대 위로의 말을 했을 것이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충무공은 아무런 국방준비가 없었던 그 당시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군사를 훈련시켜야 했으며 무기를 정비하고 거북선을 만들었다. 새로운 제도, 새로운 구상 그것이 바로 충무공의 정신이었다. "IMF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군인이기 때문에"라고 하는 말은 있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충무공의 정신으로 재무장해 위기를 호기로 바꿀 수 있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