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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에 관한 문헌상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의 「태종실록」으로서, 1413년(태종 13)에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으로 꾸민 배가 해전 연습을 하는 모양을 보았다.”라는 구절이다. 또 1415년(태종 15년)에는 좌대언(左代言) 탁신이 “거북선의 전법이 많은 적에 충돌하더라도 적이 해칠 수 없으니 결승의 양책이라 할 수 있으며, 거듭 정교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의 도구로 갖추어야한다.”는 뜻을 상소하고 있다.
한편 실현은 보지 못하였으나 거북선의 유형에 속하는 배가 따로 구상된 예가 이미 이순신이 용맹을 떨치고 있던 1592년 태자를 호종한 이덕홍은 왕세자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귀갑거의 전법과 귀갑선의 이로움을 아뢰고 있다. 그는 귀갑선의 체제를 “등에 창검을 붙이고 뱃머리에는 쇠뇌를 매복 시키고 허리에는 판옥을 지어 사수를 그 속에 두고.......”라고 하고 또 “듣건데 호남의 장수들이 이것을 써서 적선을 크게 무찌르고 있다.”고 언급한 뒤 이듬해 왕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귀갑선의 구상도를 첨부하여 그것의 제작을 건의하고 있다.
충무공의 난중일기의 기록

(임진 3월 27일) 일찍 조반을 먹고 배를 타고 소포로 나가 쇠사슬 건너 매는 것을 감독하며, 조일 기둥나무 세우는 것을 보고 겸하여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을 시험하다.
(4월 11일) 비로소 베로 돛을 만들다.
(4월 12일)식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의 지현자포를 쏘아 보다.
충무공의 당포파왜병장 중의 기록
그런데 신이 일찍이 왜적의 난리가 있을 것을 걱정하고, 특별히 거북선을 만들었아온데 앞에 는 용의 머리를 붙여 아가리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 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고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에서도 뚫고 들어가 대포를 쏘게 되었는데 이번 길에 돌격장이 그것을 타고 나왔습니다.
이분의 행록중의 기록

그리고 또 전선을 창작하니 크기는 판옥선만 한데 우에는 판자로 덮고 판자 위에는 십자 모양의 길을 내어 좁은 길을 내어 사람들이 지나 다닐 수 있게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칼과 송곳을 꽂아 사방으로 발붙일 곳이 없도록 했으며 아래는 용의 머리를 만들었는데 입은 총구멍이 되고 뒤는 거북이의 꼬리처럼 되었는데 그 밑에도 총구멍이 있고 좌우에는 각각 여섯 개의 총구멍이 있는데 대개 그 모양이 거북 형상과 같기 때문에 이름을 거북선이라 하였다. 뒷날 전쟁할 때에는 거적으로 송곳 위를 덮고 선봉이 되어 나가는데 적이 배에 올라와 덤비려 들다가는 칼날과 송곳 끝에 찔려서 죽으며, 또 에워싸고 우리를 엄습하려다가는 좌우 앞뒤에서 한꺼번에 총을 쏘니 적선이 아무리 바다를 덮어 구름 같이 모여 들어도 이 배는 그 속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가는 곳마다 쓰러지지 않는 놈이 없기 때문에 전후 크고 작은 전투에서 이것으로 항상 승리한 것이다.

1592년식 거북배
장차 왜적의 침입을 염려하여 따로 전선 크기만 한 배를 만들었는데, 배 위를 둥그스럼하게 판자로 덮고 그 위에 창칼을 꽂았다. 적군들이 배에 기어오르거나 뛰어 내리면 그 창칼에 찔려 죽게 된다. 배의 이물에는 용머리를 달고 그 용의 입을 열러 대포알을 쏘았다. 고물에는 거북 꼬리를 달고 대표구멍을 냈다. 배의 포판위 좌우 방패에는 각각 6개의 대포 구멍을 냈다. 거북배에는 돌격장이 타고 함대의 선봉이 되어 나아간다. 적선이 에워싸고 덮치려 하면 일시에 대포를 놓아 가는 곳마다 적선을 깨고 부수어 임진왜란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크게 공을 세었다. 모습이 엎드린 거북과 같으므로 ‘거북배’라 하였다.

1795년식 거북배
임진왜란이 끝난지 197년 뒤인 1795년에 편찬한 「이충무공전선(李忠武公全書)」가 있는데 여기에는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통제영거북배(統制營龜船)와 전라좌수영 거북배의 45도 투시도와 거북배의 치수 구조 및 성능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문헌 한자

이물비우는 가로 널판으로 4장을 이어 붙였는데 높이는 4자(1.2m)이고, 둘째 판 좌우에 현자 대포구멍을 각각1개씩 뚫었다. 고물비우는 가로 널판으로 7장을 이어 붙였는데 높이는 7자 5치(2.3m)이고, 위쪽 너비는 14자 5치(4.5m), 아래쪽 너비는 10자 6치(3.3)m이다. 여섯째 판 한가운데에 직경 1자 2치(0.37m)가 되는 구멍을 뚫어 치(?)의 킷 다리를 꽂았다. 좌우 뱃전 밖으로 빠져 나온 멍에 뺄목 위에 신방(도리)을 걸고 신방 머리쪽에 멍에(덕판멍에)를 가로로 걸었는데, 바로 이물(뱃머리) 앞에 닿게 되어 마치 소나 말의 가슴에 멍에를 메인 것 같다.

신방을 따라 가면서 안쪽으로 널판대기(포판)를 깔고 신방우에 기둥을 언방(건축의 창방)을 걸었는데, 신방에서 언방(패란)까지의 높이는 4자 3치(1.3m)이다. 언방(패란)의 좌우에서 안쪽으로 각각 11장의 널판(덮개판)으로 고기의 비늘처럼 겹쳐서 올려덮었다. 그 잔등 한 가운데에는 1자 5치(0.47m)의 틈(등골)을 내어 돛대를 세웠다 뉘었다 하기 편하게 하였다. 뱃머리에 거북대가리(용대가리)를 달았는데, 길이는 4자 5치(1.3m), 너비는 3치(0.94m)가 된다. 안에서 유황과 염초를 불살라 입을 벌려서 마치 안개처럼 연기를 토함으로써 적을 혼미하게 하였다. 좌우에 노가 각각 10척씩 있고, 좌우 방패에 각각 22개의 포혈을 뚫었고 12개의 문을 내었다. 뱃머리의 거북 대가리 위쪽에 2개의 대포구멍을 뚫어G고, 아래에 2개의 문을 내었다. 문 곁에 각각 1개 씩이 대포 구멍이 있다.

거북 잔등판좌우에 각각 12개의 대포 구멍을 뚫었으며, 거북 ‘귀(龜)‘자의 깃대를 꽂았다. 배의 좌우 포판(마루)아래에 방이 각각 12칸이 있는데, 2칸은 철물을 쟁여 두고, 3칸은 대포 활 화살, 창, 검 등을 나누어 재어 놓았으며, 19칸은 병사들이 휴식하는 곳이다. 배 위 고물의 왼쪽 포판위에 있는 방 1칸은 선장실이고, 오른쪽 포판 위에 있는 방 1칸은 장교실이다. 군병들이 쉴때는 포판아래 선창의 선실에서 쉬고, 싸울때는 포판위로 올라와 모든 대포 구멍에 대포를 걸어 놓고 끊임없이 쟁이고 놓아댄다(영조척1척 = 0.3124m 적용)


"공이 전라좌수사를 지낼때 장차 왜적이 쳐들어오리라는 것을 알고 큰 전선을 창제하였다. 배위를 판자로 덮고 덮개 위에는 열십자로 좁은 길을 내어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창칼을 꽂았다. 뱃머리에는 용머리를 달고 (배)꼬리에는 거북 꼬리를 달았다. 대포구멍이 앞뒤와 좌우모두 각각 6개씩 나있고 큰 탄환을 쏜다. 적을 만나 싸울때에는 거적으로 거북잔등을 덮어 씌워 창칼을 가리고 함대의 선봉이 되어 나아간다. 적군이 배에 오르거나 뛰어 내리면 창칼에 찔려 죽게 되고, 적선들이 엄습해 오면 한꺼번에 대포를 쏘아 가는 곳마다 휩쓸지 않는 곳이 없었다. 크고 작은 싸움에서 이 거북선으로 공을 세운 것이 많으며, 엎드려 있는 거북과 같으므로 이름을 거북선이라고 하였다."

명나라 호옥의 ‘해방의’라는 책에 이르기를 “조선의 거북배는 돛을 세우고 눕히기를 임의로 하고 역풍이 불거나 바닷물이 태조때도 마음대로 행선한다.”고 하였는바 즉, 그것이 바로 공이 창제한 배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치수와 만듦새에 대하여 모두 자세하게 말한 것은 없다. 지금 통제영거북배가 대개 충무공의 옛 제도에서 나온 것이나 이 또한 치수의 보태고 빠지는 것이 없지 않다. 공이 배를 창제한 곳은 실제로 전라좌수영이었는데 지금 좌수영거북배가 통제영 거북배의 제도와 비교하여 약간 서로 다른 것이 있으므로 그(좌수영거북배) 식을 아래에 붙여 써둔다.


이순신 수사가 왕에게 올린 장계


먼저 거북배로 하여금 적의 층루선 아래로 곧 바로 다다르게 하여 용의 아가리에서 현자대포알과 황자대포알을 치켜 놓았습니다. 또 천자대포와 지자대포에서 대장군전을 놓아 적선을 깨어 부수었습니다.
[제2차 출격 - 당포해전 - 1952년 6월 14일 장계]

이번 싸움길에 돌격장이 거북배를 다고 나왔습니다. 먼저 거북배로 하여금 적 선단으로 돌진하게 하여 먼저 천자대포 그리고 지자대포, 현자대포, 황자대포 등 여러 가지 대포를 놓았습니다.
[제2차 출격 - 사천해전 - 1592년 6월 14일의 장계]

거북배로 하여금 먼저 돌입하게 하여 천자대포, 지자대포, 현자대포를 놓아 큰 적선을 꿰어 뚫고 돌격장이 탄 거북배가 또 적의 층각선 아래로 다달아 대포를 치켜 놓아 그 배의 대장이 앉아 있는 층각을 깨어 부수었습니다...
[제2차출격 - 당항포해전 - 1592년 6월 14일 장계]